내가 살기 위해 작은 규칙들
나는 요란하게 살지 못한다. 대신 조용히 오래 살아보려고 한다.
크게 성공하는 법보다, 무너지지 않는 법을 먼저 배우는 쪽이다.
누군가는 그걸 ‘소심’이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그 소심함 덕분에 몇 번의 겨울을 건넜다.
내가 사는 방법은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하루의 가장 작은 습관들에 숨어 있다.
일어나서 미지근한 물한잔 마시는 것,
좋은게 좋다는 생각,
아이들이 그 나이에 그럴 수 있다는 것,
먹은 그릇은 씻어서 식기건조대에 올려두는 것,
울컥하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혀끝으로 한 번만 더 접어보는 것,
내가 말하는 것이 그 사람에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
사람이 해서 생기는 일에는 다 해결 방법이 있다는 것등
그런 사소함이 내 하루를 붙들어 준다.
나는 가능한 한 내 마음을 서둘러 결론내지 않으려 한다.
사람도, 일도, 나 자신도.
마음을 자주 다치지 않게 하려는 노력이다.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면, 괜히 미안하고,
물론 나는 자주 흔들린다.
감정이 들쑥날쑥한 날에는 ‘내가 사는 방법’이 아니라 ‘내가 무너지는 방식’이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럴 때는 대단한 결심을 하지 않는다.
나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한다.
내가 살아야 세상의 모든 것들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에.
내가 아파도 남이 같이 아파할 수 없고, 내가 힘들어도 다른 사람이 나를 대신할 수 없다.
내가 그냥 아픈 것이다.
내가 살아야 한다.
내가 사는 방법에는 ‘미안함을 오래 들고 있지 않기’도 포함된다.
미안함은 필요할 때가 있지만,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손이 굳는다.
그래서 나는 사과할 건 사과하고, 고칠 건 고치고, 그다음은 내일 쪽으로 손을 펴보려 한다.
쉽지 않다. 머리 속에는 아직도 괜한 미안함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나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너, 생각보다 잘하고 있어.”
내가 사는 방법은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내 삶을, 내 마음을, 가능하면 부드럽게 다루며 살고 싶다.
부드러움은 약함이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힘이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